지나간 시간

통 속의 뇌

오란 2022. 10. 18. 19:37

통 속의 뇌

  외부에서 주어지는 자극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할 뿐, 작금의 나는 진정한 내 존재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다. 방에 앉아있는 내가 나인지, 어디선가 통 속에 절여져 있을 뇌가 나인지. 통 속의 뇌는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사실의 반증일 수도 있다. 믿음이 없어진 우리는 대다수 신의 존재를 쫓지만, 신을 믿을 염치조차 잃은 몇몇은 본인의 존재 자체를 의심한다. 나의 경우는, 자기 혐오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회피를 선택했고, 현실을 자각한게 언제쯤이었는지 가물하다. 이게 통 속의 뇌와 뭐가 다르단 말이냐.  

누군가를 미워할 힘도, 억지로 책임을 물어 따질 힘도 없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희미한 미래의 나는 결국 무언의 가치를 찾아 승리했을까. 마음 속 깊이 썩어가고 있다는건 알고있다. 너무 오래된 일이다. 어떤 우울과 무기력은 차마 빗대지 못할 감정이다. 이런 저런 문구를 덧대어 꽁꽁 싸매봐야 본질은 타인에게만 가려질 뿐. 나는 그 속을 안다. 이러한 나와 타인간의 정보의 불균형이 내 모든 어둠의 중심이다. 무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 한결 편안할텐데. 나의 오랜 자기혐오는 폭발적이진 않아도 꾸준했기에 더 치명적이었다. 자기혐오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연쇄작용. 나는 나로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데 스스로를 혐오한다는건 참 복잡한 감정이다. 방어적이지만 붙임성이 좋고, 혼자가 편하지만 사람의 관심을 갈망하며 나를 사랑하는 것 보다 타인을 사랑하는게 쉬운 사람이 되었다. 

찝찝하게 감정을 배설하고 조금은 홀가분해졌나. 중심을 잃으니 기울어진 세상도 더는 아무렴 상관없어진 나는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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